한 달쯤 전에 영국에 사는 누군가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직장을 잡아서 아예 이민을 해서 살고 있는 젊은 주부인데, 82쿡 에서 내 글을 보고 여기 내 블로그까지 알게 되어서 자주 와서 내 글을 본다며, 말하자면 일종의 팬레터 (라고 하긴 좀 쑥스럽지만 :-)를 보낸 것이었다.
외국에서 다른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의 도움없이 오로지 부부 둘만의 노력으로 두 아이를 키우며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고 한다) 직장까지 다니고 있는 공통점과 커피와 티를 좋아한다는 것까지 비슷해서 서로 이메일을 주고 받게 되었는데, 그녀가 홍차를 선물로 보내왔다. 영국은 홍차의 나라 아닌가!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은 둘리양이 열이 나서 어린이집에를 못가고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연구실에 데리고 와서 급한 업무를 처리했고, 또 하루는 내내 집에서 지냈는데, 대체로 잘 놀다가도 몸상태가 안좋아지면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나는 낮시간 동안에 아이한테 매달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밤에도 잠을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척 피곤한 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홍차 선물이 도착해서 얼른 한 잔 만들어 마셨더니 기운이 조금 솟아나는 듯 했다.
아파서 꼬질꼬질한 둘리양이 홍차와 함께 온 영국 동요 씨디를 틀어주니 재미있어했다. 내 컴퓨터 왼쪽의 봉투 안에 가득 든 것이 홍차 티백이고 그 옆에는 예쁜 글씨로 직접 쓴 카드도 보인다.
홍차 특유의 떫은 맛이라고는 전혀 없이 은은한 향이 참 좋아서 학교에서도 만들어 마시려고 몇 개를 가지고 출근을 했다. 둘리양도 이젠 다 나아서 어린이집엘 가고, 나도 오랜만에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하고 기대하며 출근을 했는데 내 연구실 문 손잡이에 웬 선물 꾸러미가 하나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지? 하며 열어보니, 우리과 동료교수 데이나가 카드와 함께 두 종류의 홍차와 머그컵까지 셋트로 선물을 보낸 것이다.
아하~ 그러고보니 지난 학기 첫번 교수 회의에서 동료들간의 화합을 더욱 다지기 위한 아이디어로 마니또 처럼 동료 이름 하나씩을 뽑아서 비밀리에 그에게 격려의 말을 전해주자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데이나가 내 이름을 뽑았었구나… 세 아들을 음악가로 키우고 자신도 무척 고운 목소리로 가끔 동료들의 생일이나 학과 행사 등에서 노래를 부르곤 하는 초등교육 전공 교수인 데이나는 무척 여성스럽고 자상하고 친절하고.. 암튼 호감 가득한 사람인데 이렇게 다정한 카드와 선물까지 받으니 더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데이나의 선물은 무척 고맙고 기분이 좋지만… 나도 얼른 어딘가 연구실 구석에 오래도록 방치된 그 누군가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찾아서 그에게 격려의 메세지를 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생겨버렸다. 아이고… 안그래도 할 일이 많이 밀렸구만… 일거리가 또 하나 늘었네… 하고 푸념은 하지 말도록 하자.
어쨌든 이젠 봄이 오지 않았는가. 그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고, 아이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행복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니 말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고로 돌아오지 못하게 된 수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위한 명복을 빈다.
2014년 4월 17일에 쓰다.
다 쓰고보니 이 글은 유아교육 이야기 보다는 먹고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에 더 어울리는 것인가 싶다…
아무려면 어떠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