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2015년 양의 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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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간으로 어제 저녁이 한국에서는 새해 아침이라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인사 전화를 드렸고, 오늘은 친한 사람들 몇 분을 불러서 떡국을 끓여 먹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해에 난생 처음으로 부모가 될 우리 학교 어나더 닥터박 부부와, 길건너 사시는 이교수님과, 산골짝에 사시는 주교수님이 오셨더랬다. 주교수님은 미국 땅에 살면서 1월 1일과 추석명절마다 차례상을 차리신다. 한국음식 재료를 파는 가게가 시원찮은 미국 시골에 살면서, 전업주부도 아닌 교수가 차례상을 차려내는 걸 보면, 나도 이만하면~ 하고 우쭐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려고 한다. 암튼, 차례 음식을 많이도 만들어서 우리집까지 종류별로 가져다주신 주교수님이 무척 고마웠다.

손님들이 가시고 설거지를 마치고 컴퓨터를 열었더니 컴퓨터 달력에 저장된 일정 하나가 뜬다.

“이 방학 중에 내가 무슨 일정을 잡아놓았었지?” 하며 확인하니, 내일이 코난군의 치과 정기검진일이란다.

아……..

코난군을 비롯한 우리 가족이 단골로 다니는 칫과 의사 선생님은 무척이나 정직하고 재주도 많고 부지런한 분이셨다 (과거형…).

치아 건강에 남보다 주의를 조금 더 기울여야 하는 남편과 나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데, 이거 뭔가 탈이 난 건 아닌가 하고 걱정을 하고 가도, 절대로 환자에게 겁을 주거나 필요없는 진료를 권하지 않는 정직한 의사였다. 오히려 나나 남편이 ‘이 부분이 시리고 아픈데 치료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나이가 들면서 이가 마모되어서 생기는 현상이니 따로 치료를 할 방법도 없고, 이만한 정도의 문제는 칫솔질만 부지런히 잘 하면 평생동안 문제없이 살 수 있다는 등의 조언과 격려를 해주실 정도였다.

칫과 건물은 무척 오래되었지만, 그 안의 전기 배선 공사를 자신이 직접 하고, 지붕을 수리하는 일도 직접 할 정도로 재주가 많고, 여름이면 휴가를 내어서 아프리카에 의료봉사를 다니곤 하던 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칫과의사를 하고 있던 닥터 마이어는 50대 후반 정도의 나이였는데, 지난 여름 코난군의 정기 검진을 마치고 6개월 후의 다음 검진 일정을 잡은 것이 바로 내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정기 검진을 마치고 며칠 후 우연찮게 티비 채널을 돌리다가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 닥터 마이어가 탄 자가용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사람 일이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바로 며칠 전에 만났던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참 믿어지지 않았다.

닥터 마이어가 돌아가신 이후 우리 가족은 아직 칫과 주치의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직한 의사가 아니라면 검진이나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클 것 같아서이다.

어쩌다보니 정초부터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내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는 사람이니 – 부지런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데에 본보기가 되니 말이다 – 잊지 않고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면, 대단한 인물에 대해서 장황하게 적은 위인전을 읽기 보다는, 오히려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본받고 존경할만한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이 더 유익할 듯 하다. 부지런히 일하면서 차례상을 차리는 주교수님이나, 황망한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언제나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닥터 마이어…

그리고 어제 샬롯 어린이 박물관 화장실에서 만났던 씩씩한 백인 아줌마 까지… (코난군 보다 어린 삼남매를 혼자 데리고 와서 화장실에 왔다가 나랑 마주쳤는데, 어린 아이 셋이 화장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힘들어하기는 커녕 유쾌한 모습으로 해내는 것을 보며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가끔 짜증을 부렸던 나자신을 반성했다.)

새 해에는 이렇게 존경할만한 여러 사람들을 늘 기억하면서 나도 부지런히 힘차게 그리고 유쾌하게 살아야겠다.

201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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