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에 내가 처음으로 맡았던 다람쥐반 아이들을 종업시키고 (졸업이 아니라 종업이다) 나는 유아교육계를 떠나고자 마음먹었었다. 푸른기와집 부설 유치원 교사생활이 지긋지긋하도록 힘들기도 했지만, 다른 유치원에 취업해도 결국은 대학교에서 배운 제대로 하는 유아교육을 펼치지 못하고 원장과 학부모의 틈바구니에서 엉터리 유아교육을 해야만 하는 구조, 뭇사람들의 애보는 사람 정도의 인식과 대우, 용돈으로나 충분하지 독립적인 생활비로는 절대 부족한 봉급 수준, 후두와 척추및 기타 관절에 해로운 직업환경…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유아교육 교사라는 직업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단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몇 달간은 일을 하지 않고 종로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대학원이나 유학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막연하게 영어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교원이었는지 구몬이었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런 학습지 회사에 원서를 내기도 했었는데, 학습지 교사 근무가 아닌, 연구개발 분야에서 근무를 원한다고 했더니 영영 소식이 없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 피아노만 가르치기로 하고 두어달 나가기도 했는데, 내가 삼대 유아교육과 출신인 것을 알고는 자꾸만 유아반을 신설해서 맡아달라고 부탁하길래 거기도 그만둔 일이 있었다.
유아교육 전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가 아닌 직업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인맥도 별로 없고, 유아교육 아닌 분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니, 새로운 직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나 친한 (그러나 유아교육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작 유치원 선생님이나 하려고 삼대씩이나 졸업했느냐며,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유치원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유치원을 직접 운영하려면 기본적인 자금만해도 수억이 들어가는데, 그럴 돈이 있으면 학부모랑 줄다리기 씨름 같은 것 안하고 그 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수익으로 놀고 먹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정적으로 그런 큰돈도 없으니 고려 대상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었다. 유아교육 관련 일반기업에 취직하려던 시도도 별 성과가 없었고, 그래서 대학원 입학을 한 번 해보자 하고 삼대 일반대학원 유아교육과 전형에 원서를 냈다. 입학 심사는 영어 필기 시험과 전공 면접 시험이었다. 영어는 몇 달간 토플 학원을 다녔던지라, 함께 시험을 봤던 삼대 유아교육과 동기들에 비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시험을 보고 나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내 영어 성적이 가장 나았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전공 면접이었는데, 한 번에 서너명이 같이 들어가서 전공 교수님이 하시는 질문에 차례로 대답을 했다. 내가 한 것과 다른 사람들의 대답이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질문 자체가 고난이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었고, 서너명이 함께 대답을 하다보니, 두 번째 대답하는 사람은 첫번째 사람의 대답에 살을 조금더 붙이는 정도이고, 세번째 대답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는 수준의 변별력이 없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전공 면접은 시험이라기 보다는, 교수님들이 누가누가 지원했나 한 번 보자, 하는 자리 마련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전공 관련 질문은 형식적으로 하나 던지듯 하고, 그 다음에는 “넌 어디 유치원에서 일했니?” “왜 겨우 일년만 하고 그만뒀어?” 하는 개인적인 질문이 보다 더 본격적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발표날에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들은 결과는 불합격. 내 영어 점수가 몇 점이었는지, 면접 점수는 얼마였는지, 그런 것은 전혀 알려주지 않는 형식이었다. 나중에 보니 함께 응시했던 친구와 선후배 중에서는 단 한 명이 합격했고 – 그녀가 바로 지금 경기대 교수인 부성숙이다 ㅎㅎㅎ 이 친구는 이미 내 다른 글에서 자주 등장한 바 있으므로 가명대신 본명을 그대로 썼다 – 현장 경험이 무척 많은 학번높은 선배 몇 명이 합격했고, 그 다음으로는 다른 대학 출신이 몇 명 합격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타대학 출신 합격자는 현장 경력이 전무한 사람도 있었고, 학부 전공이 유아교육이 아닌 사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삼대와 타대학간에 암묵적인 양해각서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즉, 삼대 유아교육 출신이라면 절대로 입학이 안될 조건이지만, 타대학 출신자에게는 다른 종류의 기준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뒷이야기를 어찌 알게 되었는고 하니, 미국에 유학을 와서 만난 선배 아닌 선배 덕분이었다. 이소연 선배 (가명)는 학부는 다른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경력없이 삼대 대학원에 바로 입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중에 결혼을 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왔던 것이다. 그 선배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서 나와 삼대 동문이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하며 나와 친분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사람인데, 졸업연도를 따져보니 내가 대학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지원하려고 했을 때 교사경력이 없으니 지원해도 안될거라는 말을 들었던 그 시점에 이 선배는 이미 석사과정을 교사경력없이, 심지어 학부 전공도 유아교육이 아닌 아동학이었지만, 입학해서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소연 선배에 대해서 쓰자면 또다른 회고록 씨리즈가 나올 만큼 이야기가 많지만, 글이 너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까봐 참기로 한다. 단 한 가지만 밝히자면, 그녀는 교사경력이라고는 전혀없지만 스트레이트로 삼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미국 대학원에는 삼대 대학원 수업중에 부속유치원 교실보조 활동을 한 것을 교사경력인 양 꾸며서 입학을 했고 (교사 경력 3년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입학 지원 요건이었다), 결국은 미국 대학원과 삼대 대학원 모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아기 아이들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어도 박사학위는 두 개나 받고 지금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일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삼대 대학원 입학에 실패하면서 절망을 넘어서 분노를 느꼈다.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입학심사… 숨막힐듯한 사제관계와 선후배관계… 유아교육도 싫고 삼화여대도 미웠다. 나중에 카더라~ 하면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더욱 정이 떨어졌다. 누구누구는 어떤 교수님이 예쁘게 보셔서 대학원에 입학했고, 그 교수님이 정년퇴직하실 때 쯤이면 그 누구누구가 박사학위를 받을 시점과 딱 맞아떨어져서 그 뒤를 이을거라더라… 누구누구는 집안이 어마어마해서 교수님들이 모두 뒤를 밀어주고 있다더라… 누구누구는 엄마가 유치원을 크게 운영하고 있어서 그 덕분에 대학원에 입학했다더라… 누구누구는 첫 도전에서는 떨어졌지만 다음해에 어디 유치원 원장 며느리가 된 다음 재도전해서 대학원에 입학했다더라…
그렇게 희망으로 시작해서 좌절로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인 1996년 연말에 선배의 전화 한 통을 받은 것을 계기로 내 유아교육 인생은 또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2015년 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