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일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생산직이나 사무직과 달라서 이렇게 한가해도 괜찮은가? 걱정될 정도로 시간이 여유롭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도저히 다 해내지 못할 정도의 업무가 동시다발적으로 눈앞에 떨어지기도 한다.
지난 주에는 궂은 날씨 때문에 우리 학교가 휴교를 한 적도 있고, 교생들이 실습을 나가는 초등학교는 일주일 내내 문을 닫아서 이래저래 내 스케줄도 한가로웠다. 다만, 아이들도 학교를 안가고 나와 함께 집에 있으니, 그 여유로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 즉, 밀린 업무 처리라든지 나중에 해야할 업무를 미리 해둔다든지 하지 못하고 – 그냥 다 보내버렸다.
이제 날씨도 진정되고 학교도 정상적인 분위기를 찾아가니, 마치 장마철 개울물이 흘러가듯 내게 강같은 평화 대신에 강같은 업무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늘만 해도 아침에는 대학원생의 졸업 구술시험에 참석해서 두 시간을 보내고, 연구실로 돌아와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학생들과 동료들의 이메일을 처리하고, 대학 평가 인증 관련해서 프로그램 대표로서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니 벌써 오후 세 시가 다 되었다.
내일 강의준비도 아직 다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오늘 희의에서 의논했던 프로그램 대표로서 해야할 일의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중압감이 느껴진다. 스무개도 넘는 학생들의 평가자료를 모두 재정비해야 하는데, 한 가지 자료가 적게는 열 가지 이상, 많게는 백 가지 이상의 평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각각의 항목마다 유아교육 또는 유아특수교육 연합회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일치하는 것을 찾아서 표로 만들어 넣어야 하니, 대략 계산하면 수 백개의 평가 항목에 해당하는 연합회 평가 기준 항목을 다 찾아서 써넣어야 하는 셈. 그 작업이 끝나면 이게 잘 한건지 못한건지를 또 연합회 담당자와 연락해서 검토를 받고, 피드백에 따라 더 수정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은 3년 후에 있을 대학 평가 심사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니, 그 3년 동안 이보다 몇 배도 더 되는 다른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과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취직 면접을 보는 중이라, 지도교수인 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도 많이 들어오고, 그들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이니 신중하게 잘 써야한다는 부담도 있다.
심지어 시간 강사로 일하는 선생님이 다른 학교에 정식 교수 자리로 지원하는데에 추천서를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물도 얼른 읽고 채점해서 돌려주어야 하고…
다음세대 원고도 얼른 써서 보내야 하고…
교생실습 나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 만나서 교생실습생이 비디오 녹화를 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부탁도 해야 한다. 이미 두어차례 이메일로 그 목적과 필요성과, 학생들의 초상권 보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한 적 있으나, 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아직까지도 그 안전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비디오 녹화를 허락해주지 않아 일부 교생들이 과제를 기한에 맞춰 제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종류의 회의는 그냥 몸만 들고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논리의 순서로 상대방을 기분좋게 설득할 것인지 전략을 짜야 하기 때문에 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이 무척 스트레스를 준다.
그 외에도 수시로 이메일로 날아오는 참석해야 하는 회의 목록… 실습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이야기…
그리고 오후 다섯시가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퇴근해서 아이들을 늦지 않게 픽업해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위의 모든 업무의 중단은 물론이고, 업무에 대한 생각조차 조용히 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간간이 드는 잡념…
과연 이게 최선일까…?
이보다 더 열심히 해야하는데, 남들은 한발 앞서 가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허우적거리며 뒤쳐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은 테뉴어를 받고나면 영영 안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암튼, 이런 잡념들을 조금이나마 다스려보려고 산더미같은 업무를 옆으로 제쳐놓고 명상 음악을 찾아서 틀어놓고 뜬금없는 이기적인 유전자 라고 하는 진화생물학에 관한 책을 잠시 읽었다. 복잡한 업무와 더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서 영혼에 휴식 시간을 주려는 목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마음과 생각의 움직임 또한 소중한 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기록해두려고 한다.
자, 그럼 이제 힘내서 얼마 남지 않은 오늘 오후 시간을 마무리하자.
백퍼센트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나는 잘 하고 있는거야! 하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2015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