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생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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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총장님이 주최하는 만찬이 있었다. 10년, 15, 20, 25, 30년 근속한 교수와 직원을 불러서 격려하고 은퇴하는 교직원을 축하해주는 자리였는데, 옆방의 동료교수 섀런과 함께 참석해서 밥을 먹고 이런 기념패도 받아왔다.

IMG_1878.JPG 래드포드 대학교 교수가 된지 벌써 10년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그동안 없던 아이들도 둘이나 생기고, 학교에서 테뉴어를 받은 이후로는 중견 경력 교수가 되어 중책을 맡아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뭐랄까… 지역 유지? 급으로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어제 오전에는 버지니아 부지사와 지역사회 유아교육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10년째 유아교육 교수로 일을 하다보니 50-60명 정도 되는 참석자들의 절반 이상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텔 회의장에 자리잡고 앉아 있으니 부지사가 인삿말을 시작했다.

지방자치제도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되게 발달한 미국에서는, 주지사가 주 내에서 가지는 영향력과 결정권이 무척 커서, 단순히 한국에서의 경기도지사, 경남도지사, 등등과 같은 레벨로 보아서는 안된다. 거의 주지사는 자신의 주에서 대통령 급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주지사의 부인을 퍼스트 레이디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부지사라는 사람이 그냥 고위공무원 정도로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주 내의 교육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중요 인물이라는 말을 하려다보니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다.

민주당 출신인 오바마 대통령이 얼마전에 미국의 미래는 유아교육에 달려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또 민주당 출신인 우리주의 주지사는 그 뜻을 이어받아 버지니아 주에서 유아교육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표명하고, 우리나라 땅보다도 넓은 버지니아 주 곳곳의 지역마다 필요하고 절실한 유아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부지사를 보낸 것이다. 

Lieutenant Governor Ralph Northam은 무척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였는데,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의대를 마친 다음 군의관으로 오랫동안 복무하다가, 군에서 은퇴한 다음에는 소아신경정신과 의사로 일했다고 한다. 이번 민주당 정부가 국민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복지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미루어, 노담 부지사의 특이한 경력으로 발탁되었다보다 하고 짐작했다. 게다가 소아정신과 의사이니 유아교육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 이번 일에는 아주 적임자인듯 하다.

회의에서 연사중 한 분이 내 박사논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레미 박사였는데, 자신의 일생동안의 연구를 짧게 발표하면서 아래의 유인물을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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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버지니아 공대 뇌신경 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는 레미 박사님은 예전에 버지니아 유아교육 학회에서 연설 마무리에 춤을 출 정도로 유머 감각이 뛰어난데, 이 날의 짧은 연구 발표에서도 여지없이 재치있는 입담으로, 그러나 강력한 주장을 펼쳤다.

“이 한 장의 유인물은 제가 400개 이상의 논문과 수십권 이상의 책에서 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라는 말로 시작해서 청중을 웃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굵은 글자로 한 페이지에 적힌 것이 얼마 안되는 분량이라,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으로 웃었지만, 한 편으로는 유아교육이 나중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역설하는 말이었다.

내가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레미 박사님의 연구를 많이 읽었는데, 그는 최초로 가장 과학적인 연구설계를 바탕으로 빈곤층 유아에게 양질의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장기간 실시하고, 그 결과를 35년 이상 추적하는 장기연구를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위의 유인물에 적힌 것이다. 즉, 가난한 아이들이 좋은 유아교육을 받았을 경우, 그리고 그냥 보통의 가난한 아이들이 밟아가는 수순을 거친 사람들을 35년간 추적하며 조사했더니, 신체 사회 정서 학업 직업 생활상태 전반에 걸쳐 큰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45년 이상 이렇게 연구를 많이 했고, 그 결과 양질의 유아교육이 이렇게나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확실하게 밝혀내었는데, 더이상의 연구결과가 필요하십니까?” 하고 부지사에게 질문아닌 날카로운 발언을 던졌다.

또한, “양질의 유아교육이 유아기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생동안에 이렇게 좋은 효과를 내는 반면에, 45년 동안 수많은 연구를 직접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연구결과를 읽었지만, 수준미달의 유아교육이 인간발달에 그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래도 유아교육의 질을 향상시키지 않겠습니까?” 라는 말로 짧지만 강렬한 연설을 마쳤다.

아….. 그 카리스마와 감동이란…

저 분의 연구가 내 박사논문을 이끌어주었다는 자랑스러움…

(사실, 내 박사과정 논문 주제도 레미 박사님의 일생의 연구 분야와 무척 유사한 것이었다.)

레미 박사님을 비롯한 몇몇의 발표가 끝나고 한 시간 동안의 질문과 건의를 위한 자유발언 시간이 이어졌다.

나는 수줍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라 (?? ㅋㅋㅋ) 보통은 그런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기만 하는 편이지만, 이 날의 참석자들을 두루 살펴보니 대학에서의 교사양성 관련 분야에서는 내가 유일한 참석자인 것 같아서 부지사가 정책을 펼치는 데에 꼭 당부하고싶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제가 10년 동안 유아교육 교사를 양성해왔지만 그 중에 단 한 명만이 이 지역에 남아서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봉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생활비를 줄이고, 또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노던버지니아 도심지로 떠나가기 때문이죠. 좋은 교사만이 좋은 유아교육을 만들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시골 지역에서 좋은 교사를 유치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구요. 그러니 시골 지역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교사에게 인센티브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침 나보다 앞서서 어떤 청중이 유아교육 교사의 박봉에 대해 건의를 먼저 했었다. 미국 전체에서 경제규모 8위를 차지한 부자 주에서 유아교육 교사의 월급은 다른 주와 비교해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에 부지사는, 지난 수년간의 예산삭감으로 인해 당장에 드라마틱하게 임금을 인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꼭 참조하겠노라고 대답을 했었고, 나는 거기에 더해서 월급의 인상 뿐만 아니라 교사 양성과정에서 필요한 지원을 건의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질문이나 건의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듣고만 있던 사람들이, 내 발언을 마치자마자 박수를 쳐서 조금 당황했었다. 나, 이러다가 국회의원 출마하는 거 아녀? 하는 생각도 잠시… 🙂

심지어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레미 박사님이 내 발언에 바로 이어 같은 뜻을 전하는 추가 발언을 하시기까지 했다.

회의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파하는 자리에서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까지 내게 와서 좋은 발언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같은 일을 10년동안 하다보니, 내 분야에 대해서 할 말이 있고, 그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배짱이 생겼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런 것을 일컬어 “전문가” 라고 불러주는구나 하고도 느꼈다. 또한, 이젠 빼도박도 못하고 나는 이 지역의 유아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벌을 받아 자기방에 갇혀있던 코난군이 방문 아래로 내밀었던 질문지를 저장하며 오늘의 글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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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말미에 그린 얼굴은 반성의 의미로 흘리는 눈물이냐고 물었더니, 화가난 눈썹과 세모로 치켜뜬 눈이지 눈물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ㅎㅎㅎ

자기 방문에 여섯개의 장식 패널도 그려넣고, 방문 밖의 발치를 비추도록 달아놓은 전등도 잘 그렸고, 방문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 잘 표현했다. ㅎㅎㅎ

2015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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