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 건물을 나와서는 차로 연구소를 돌아보았다. 예전에는 없던 최신식 건물이 여러 동 생겨났다.
여기는 국립 싱크로트론 광원 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번에 새로 지은 시설이다. 입자가속기? 와 비슷한 것인지, 다른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좌우지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 시설이어야만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전자를 움직이게 할 수가 있다나 뭐라나… 참, 아는 게 없으니 엉터리 설명을 쓰는 게 고역으로 느껴진다 🙂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쓰려고 했던 이유는, 10년 전에는 이런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새로이 최신식 건물로 잘 지어놓은 것이 참 대단하고 멋있어보여서이다.
10년 전에 각 과별로 소프트볼 경기도 하고,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쏠리는 것처럼, 소프트볼 경기의 승패보다도 더 관심을 기울였던 바베큐 파티도 함께 했던 운동장은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홀 박사님과 작별을 하고나서 화학과 옆에 있는 카페테리아 건물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 여름방학 특별행사를 구경해보기로 했다.
국립연구소가 지역사회 어린이들의 과학교육을 장려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방학동안 이런 전시와 행사를 일요일마다 개최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행사 중에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먼 여정을 앞둔 우리에게 시간이 잘 들어맞는 마술쇼를 보기로 했다. 물론, 이 모든 행사는 국립연구소에서 하는 비영리 행사라서 입장료가 없었다.
마술의 역사와 수수께끼 (Mystery and History of Magic) 라는 이름의 이 쑈는 그냥 마술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고대에 마술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원리는 무엇인지, 하는 설명을 곁들인 것이라, 코난군 정도 연령의 어린이들이 재미와 학습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마술 중간중간에 객석에서 어린이 참가자를 불러내서 직접 마술을 시연하는 순서가 여러번 있었는데, 코난군은 처음에는 완전히 남의 일처럼 손을 들 생각도 안하더니, 점차 회를 거듭해갈수록, 자신도 무대에 올라가서 마술에 참여하고픈 마음이 드는지 표정과 움찔움찔 하는 손이 보였다. 조금 더 자라서 지금보다 더 용기(혹은 뻔뻔함? 아니 대범함 이라는 말이 더 낫겠다 :-)가 생기면 언젠가는 무대에 올라갈 날도 오겠지.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를 돌아보고 롱아일랜드를 빠져나오기 전에, 잔뜩 벼르고 기대했던 일식뷔페식당 미나도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예전에 남편과 함께 왔을 때 생선초밥을 무척 맛있게 먹었는데, 버지니아에서는 그 어떤 일식당을 가도 여기만 못했기 때문에, 이번 뉴욕 여행에서 꼭 빠뜨리지 말고 가자고 단단히 벼르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82쿡 회원 한 분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이름은 몰라도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주 얼굴을 보던 낯익은 아이들이 저만치 건너편에서 음식을 담고 있는가 싶더니 테이블로 돌아가며 “아빠~” 하고 부르는데, 거기에는 또한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주 보던 낯익은 얼굴의 어른이 있었다. 이건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해야할지, 모르는 사이라고 해야할지… 참 애매했지만 그래도 뜻하지 않은 만남이 무척 반가웠다.
82쿡 게시판에서 인기가 많은 아이들의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주고, 어른들끼리는 인사를 나누었다. 미나도를 나선 것이 오후 세 시였고, 일요일 오후라 비교적 한산한 맨하탄을 빠져나오니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었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가능하면 중간에 쉬거나 하룻밤을 묵지 않고 곧장 내려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이들은 어차피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차 안에서 잠이 들테니 어른들만 힘을 내면 될 일이었다. 마침 이 사진의 주인공이 82쿡 게시판에 우리 두 가족이 우연히 만났던 사건을 재미있게 써올려서, 내 스마트폰으로 글도 읽고 댓글도 달고 하면서 내려오느라 장거리 운전이 덜 지루했다.
긴 거리를 되짚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 닷새 하고 한나절만이었다.
원기왕성한 아이들은 다음날부터 활기차게 평상시 생활을 유지했고, 어른들도 몸살이 나거나 하는 일없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방학 중이라서 낮잠도 잘 수 있고 느긋하게 쉴 수 있으니 체력 회복이 빨랐던 것 같다.
남편과 내가 동시에 긴 여름 방학을 누릴 수 있는 일을 밥벌이로 하고 산다는 것은 참 대단한 행운이다. 이렇게 긴 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고,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아이들이 더 자라면서 조금씩 더 먼 곳으로, 조금씩 더 깊은 주제와 외미를 가지고 여름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8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