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감옥에 셀프 감금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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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래 연구실이 카펫 교체와 페인트칠을 새로 하는 작업 때문에 완벽하게 비워야 해서, 아랫층의 한명숙 선생님 연구실로 임시 이사를 했다.

여름 방학이지만 강의나 다른 행정 업무로 여전히 출근해서 일해야 하는 다른 동료들은 큰 짐을 빼고 어수선한 연구실에서 페인트칠을 시작하는 그 날까지 버티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한명숙 선생님 덕분에 이 방으로 냉장고와 커피메이커도 옮겨놓고 이렇게 호젓하게 일을 할 수가 있어서 운이 좋다.

이 방은 건너편 박혜진 선생이 일하는 건물과도 가까워서 다같이 모여서 회의를 하기에도 편리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기도 하다.

(그래서 보통의 책상이 아닌 이런 회의용 원탁을 내가 주문하기도 했다.)

 

처음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는 세 사람이 모여서 의논할 일이 많아서 함께 간식도 먹으며 즐겁게 일을 했는데, 한명숙 선생님이 여행을 떠나고 박혜진 선생은 데이타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넘겨준 이후로는 굳이 나와 한 방에 앉아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 방에 숨어서 나혼자 글을 쓰는 것이 이주일째이다.

이 방은 사진에 보이는 작은 창문 하나가 전부라서 불을 끄면 아주 컴컴하다.

일부러 천정의 전등을 켜지 않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스탠드를 켜놓았다.

방문도 꼭 닫아놓고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내다보지 않고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숨어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썼던 글을 고치고 다시 쓰고 하는 동안에 '이게 과연 잘 쓰고 있는 것인지', '목표로 삼은 학술지에서 이 논문을 실어줄지', '다른 학술지를 찾아보는 게 더 나을지', 등등 오만 잡념이 수시로 든다.

우선 가지고 있는 데이타로 케이스 스터디 논문을 간단하게 써서 프랙티컬한 저널에 한 편 내고, 여름 방학 동안에 데이타를 더 모으고 글도 더 잘 써서 그것으로 수준높은 저널에 또 한 편 내자고 의논을 모았는데, 쉬운 저널에 간단한 케이스 스터디 논문 한 편 쓰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나마 강의도 없고 실습지도도 없는 여름 방학 기간이고, 내가 여기에 있는줄 동료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절대 방해받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으니 이나마 가능한 일이다.

이제 곧 퇴근해야 할 시간이고, 내일 하루만 더 출근하면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더이상 이런 뭉탱이 시간은 없다.

남편이 여름학기 강의를 매일 나가기 때문에 내가 두 아이들을 완전히 책임져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일 이 시간이면 논문이 대략 마무리가 되겠지…

 

내일이면 일단은 글감옥 탈옥 혹은 출소를 할 것이고, 6월 중순에 새로이 단장한 오피스로 다시 모든 짐을 옮기러 학교에 나올 계획이다.

 

2018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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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공원

내 평소 신조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만들고 보자, 하는 것이긴 하지만…

글감옥을 출소하는 오늘 이 시점에 지금껏 쓴 글을 보고 있자니 스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서투른 글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내 학문의 깊이가 너무 얇은 탓이 크다.

일단은 이 글을 여기서 접어두고, 내일부터 한 며칠간은 전업주부 놀이를 하며 머리를 좀 식히고, 그 이후에 시간을 내서 다시 고쳐보려고 한다.

좀 더 나은 글로 고친 후에라야 공동 저자들에게라도 내놓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아…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 날라리 학자인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확인하니 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