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철도에서 내리는 역과 밴쿠버로 가기 위한 암트랙 기차를 타는 역이 바로 붙어있고, 또 스페이스 니들이나 파이크 마켓과도 가까운 거리라서 차이나타운 국제지구에 호텔을 예약했었다.
중국은 워낙에 인구가 많으니 해외로 나와 사는 사람들도 많고 그래서 어지간한 대도시에는 차이나타운이 꼭 있다.
씨애틀의 차이나타운도 그러려니 하고 짐작했는데, 막상 며칠 지내며 돌아보니 재팬타운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중국 반 일본 반 섞여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도 차이나타운 국제지구 라고 지었다보다.
1900년대 초반에 도시가 시작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이주해와서 살게 되었는데, 이 지역에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것 같다.
경사진 길에 수직으로 올려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일본 사람들이 출자해서 설립한 은행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보통의 항구도시가 그렇듯, 씨애틀에도 경사진 언덕이 많았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던 동네도 그랬고, 샌프란시스코나 이탈리아의 나폴리 등도 그러하다.
나의 지리적 추론에 의하면, 큰 배가 들어올 수 있는 항구가 되기 위해서는 수심이 충분히 깊어야 하고, 그렇다면 물에 잠기지 않고 남아있는 육지 부분도 산악지형처럼 골짜기가 깊은 것이 당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
씨애틀에 도착한 첫 날, 세 시간을 벌어서 하루종일 시내 구경을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마침 위도가 높은 곳이라 해가 늦게 지기도 해서 더더욱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우리 호텔 주변에는 일본 신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런 곳도 있었다.
대니 우 라는 사람을 기리느라 조성한 공원이라고 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일본 인형이 잔뜩 전시된 창이 보인다.
다음 창문에는 일본 떡방아가 보이고…
거기가 바로 우리가 묵었던 파나마 호텔이었다.
대각선으로 달린 문 손잡이가 어릴 때 광복동이나 서면에서 보았던 그 시절 고층 건물의 출입구를연상하게 했다.
1920년대에 지어진 호텔은 지금도 그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호텔로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고 티비도 없는, 그래서 옛날 영화에서나 보았을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현대식 호텔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무척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호텔 주인장은 미술을 전공한 이력이 있는 성질 꼬장꼬장한 할머니였는데, 오래된 마룻바닥에 흠집이 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여행용 바퀴달린 가방을 절대로 끌고 다니지 못하게 했다.
그걸 모르고 내가 잠시 가방을 끌었더니 그러지말라고 호통을 치는데, 옆에 있던 젊은 아가씨 직원이 오히려 미안해하며 내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주인장 할머니는 금새 다시 친절해져서 호텔 안 곳곳을 자랑스럽게 안내해서 구경시켜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역사적인 호텔의 주인장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용할 대중교통 시설과 거리가 가깝고 숙박비가 저렴해서 선택한 호텔이었는데 뜻밖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아침 식사도 무료로 제공되는데 카페 스타일로 커피나 차와 함께 크로아상 등의 빵이 나온다.
여기가 아침을 먹는 카페이다.
저 벽돌은 건물이 지어질 당시의 벽돌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카페의 구조가 옛날 미국 영화에서 보던 것과 흡사하다.
음악도 1930년대의 음악을 틀어놓았었다.
주인장 할머니는 괴팍해도, 짐을 옮겨주던 젊은 아가씨 직원과, 여기에서 커피와 빵을 담아주던 총각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커피와 빵도 맛있었다.
코난군와 코난아범은 원래부터 빵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둘리양과 나는 아침에는 입맛이 없어서 뭘 안먹는 습관이 있지만, 둘리양도 여기 빵은 맛있게 먹었다.
나는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아침 식사였다.
카페 벽에 옛날 차이나타운의 지도가 붙어있었는데, 사진 왼쪽 하단에 보면 씨애틀 올드 니혼마치 라고 써있다.
즉, 그 시절에는 차이나타운이기 보다는 재팬타운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다.
파나마 호텔도 일본인 부부가 지어서 운영했던 곳인데, 부부의 사진도 걸려있고, 이 건물 지하에는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일본식 목욕탕도 있다고 한다.
구식 축음기에서 일본 노래도 틀었겠지…
1920년대…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괴로운 시절이었지만, 일본은 그 당시 잘 나가던 나라이니,한국도 삼키고 중국과 맞짱뜨고, 또 어떤 사람들은 태평양을 건너와서 후지산 대신에 레이니어 산이 보이는 이 도시에 터전을 잡았던가보다.
스고이~ 데쓰요네~~
코히 히토츠 잇빠이 구다사이~~~
뭐 이런 소리를 해가며 이 카페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차를 마셨을 사람들을 상상해보았다.
이 피아노의 의자는 손으로 자수를 놓아 만든 커버를 씌웠는데 마구 앉기가 황송할 정도로 정교하고 예뻤다.
난방을 위한 라디에이터에도 장식을 새겨넣었을 정도로 그 옛날에는 여기가 화려한 사교모임 장소였던 것 같다.
그러니 100년이 다 되어가도록 보존해두어도 주인장 할머니가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길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화장실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듯, 아주 깔끔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차이나타운 입구를 알리는 구조물인데 그 왼쪽에 있는 토풀리 라고 쓴 간판은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순두부집이었다.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집에서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사먹었는데 코난군은 불고기를, 둘리양은 잡채를 맛있게 먹었었다.
차이나타운 안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는데 장기나 바둑을 둘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2018년 7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