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씨 유에스에이나 82쿡에서 미국 교포 아줌마들이 올리는 글, 그 밖에도 미국에 거주한다는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 올리는 글을 읽으면, 내가 살고 있는 미국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국이 다른 나라인 것 처럼 느껴진다.
물론, 아직도 마트의 화장지 선반은 휑하니 비어있고 학생들이 없는 대학타운은 고요한 적막감이 감싸고 있지만, 총기와 총알이 불티나게 팔린다는 둥, 동양인이 "우한폐렴"을 전염시켰다며 모욕을 넘어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둥, 조만간 폭동이 일어나서 폭도들이 집으로 쳐들어와 사재기 해둔 화장지와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다 뺏어갈거라는 등의 이야기는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는 내가 실제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편도 나도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니, 아침마다 조급증을 내면서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고 아이들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등교시키고 출근하던 그 일상이얼마나 피곤했는지, 그러지 않는 지금의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얼마나 편안한지를 느끼고 있다.
늦은 오후 무렵이면 또다시 시계를 보고 남은 업무의 양과 종류를 확인하면서 얼마만큼 더 일하고 언제쯤 마무리를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계산했던 것도 요즘은 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늦지 않게 픽업해서 집에 데리고와서 부리나케 저녁을 해먹이고, 그 전후로 레슨이나 기타활동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데에 늦지 않도록 데리고 다니다보면 퇴근 후에도 꽤나 전전긍긍하며 바빴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몇시까지 어디를 가야할 일이 없다.
그래서 빨리 먹어라, 빨리 씻어라, 빨리 치워라 등의 말을 할 이유도 없다.
온라인으로 하는 강의는 특정 시간 동안에 하는 것이 아니라, 녹화한 강의내용을 올려두거나 (남편은 이런 식으로 강의하고 있다), 아니면 강의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올려두어서 학생들이 아무때고 편리한 시간에 읽고 혼자 공부한 다음 미리 출제해둔 테스트를 치르는 (이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이다)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강의를 하러 가기 위해서 화장을 하거나 외출복을 갈아입고 운전을 할 필요가 없고, 강의 준비는 지금처럼 조용한 밤 시간에 차 한잔을 옆에 두고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시간표에 따라 공부를 하는 동안에 짬을 내어 준비하기도 한다.
혹시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걱정되어 마트에서는 셀프계산대를 이용한다든지, 다른 사람들을 만날 일을 계획하지 않는 것, 아이들 학교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이메일과 메세지를 확인해가며 학교 공부를 지도해야 하는 일 등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체로 우리 가족은 잘 지내고 있다.
오늘은 지난 2주 동안의 홈스쿨링을 최종 평가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평균 90점이 훌쩍 넘었고, 나는 86점을 받았다.
내가 스스로에게 주는 점수라서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 암튼 내가 원래 기대했던 만큼 일에 집중하거나, 큰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90점이 안되는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핑계를 대자면, 아이들 공부 스케줄을 챙기고 간식이나 식사도 챙기면서 일을 하다보니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
아이들이 2주 동안 평균 90점이 넘는 평가를 받으면 – 이 평가는 공부한 내용을 시험보는 평가가 아니다. 얼마나 시간표를 잘 지키고 다른 사람들과 갈등없이 잘 지냈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 상을 주기로 한 규칙을 주주엄마가 듣더니, 상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이번은 처음이자 2주간의 평가이니 다소 적은 비용의 상을 주고, 그 다음 부터는 4주간 평가를 해서더 큰 상을 주자고 의논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세 명의 아이들 상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으로 무려500달러나 주고 갔다.
손 큰 주주 엄마 같으니라고!
그러니까 이번 평가에 100달러, 4월 한 달 평가에 200달러, 5월 평가에 200달러씩 쓰라는 뜻이다.
내가 주주를 데리고 있으면서 물론 간식을 사다 먹이기도 하고, 주주가 우리집 전기나 물을 사용하는 비용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주주가 함께 있는 덕분에 둘리양이 학교 과제를 지겨워하지 않고 즐겁게 수행하는 데다가, 주주의 엄마나 아빠가 둘리양을 자기집으로 데려가서 놀게 하거나 식사와 간식과 심지어 선물을 안겨주기도 하니, 금전적으로 내가 손해볼 일은 아닌데, 주주 엄마는 내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주주 엄마가 주고간 돈다발 🙂
아이들에게 주주 엄마가 상을 주는 거라고 설명한 뒤, 각자 원하는 상품을 30달러 안쪽의 가격으로 온라인으로 고르도록 했다.
둘리양과 주주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예쁜 드레스와 머리띠와 손지갑을 모두 합해서 각자 25달러 정도 되는 금액으로 골랐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무슨 옷을 고를지, 거기에 어울리는 핸드백은 무엇이 좋을지, 의논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는 것도 둘리양과 주주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몇 달러, 몇 달러 계산해가면서 가격도 딱 정한 한도 내에서 잘도 골랐다.
코난군은 30달러 짜리 선물을 고르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5월 말에 왕창 몰아서 큰 선물을 받겠다고 했다.
4월과 5월 동안에 학교 과제를 잘 하고, 동생들이 다소 귀찮게 굴더라도 친절하게 대해주고, 엄마 아빠 말을 잘 들으면 5월 말에 무려 170달러짜리 상을 받게된다!
모두 통큰 주주 엄마 덕분이다.
2020년 3월 27일
지난 번 생활기와 이번 글 사이에 중요한 업데이트가 빠졌다.
모든 초중고가 2주간의 임시 휴교를 한데 이어서 아예 학년이 끝나는 5월 말까지 학교 건물을 닫기로 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될 때 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컴퓨터로 온라인 수업을 받거나 (초등 3학년 이상), 선생님이 우편으로 보내주는 학습지로 공부를 (둘리양에 해당하는 2학년과 그아래 어린 학년) 하게 되었다.
4월 23일 까지는 병원 등의 응급 시설을 제외하고는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는 것을 금지하는 규칙도 발표했기 때문에 대학교도 사실상 문을 닫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24시간 내내 같이 지내고 있다.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거나 픽업이나 배달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다행히도 식자재를 파는 마트는 정상 영업을 하고 있고, 아마존에서 정기 배달 시키는 화장지도 곧 도착할 예정이라 우리 가족은 먹고 사는 (싸는? ㅎㅎㅎ) 데에 큰 지장은 없다.
월급쟁이 이다보니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장 월급도 변함없이 들어오고 있다 🙂
집을 파는 일만 잘 진행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