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이라는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데 영국에서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책으로 썼는데, 미국 동부를 길게 차지하고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주하면서 쓴 여행기를 읽게 되었다. 1998년에 출판된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서 출판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영국에 사는 송구리 님이 내 글을 읽고 이 사람의 책을 연상했다고 말한 데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로버트 래드포드가 영화화 하겠다고 선언한 이래로 몇 차례 캐스팅과 감독이 바뀌는 과정을 거쳐, 지금 현재 로버트 래드포드와 닉 놀테가 주연을 맡아서 지난 3월에 조지아 주에서 촬영을 시작했다고도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애팔래치아 종주를 시작한 지점이 바로 조지아 주이고 계절도 3월의 초봄이었으니, 아마도 영화 촬영팀 전원이 산맥종주를 실제로 하다시피 할 모양이다.
거의 즉흥적으로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를 하겠노라고 가족과 친지는 물론 출판계에까지 떠들썩하게 선포를 한 작가 브라이슨은 그 때부터 종주에 관해 자료를 모으고 장비를 구입하고 애팔래치아 산맥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는데, 점점 알면 알아갈수록 그 어마어마한 규모와 야생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되고, 함께 등반을 하자고 멀리서 날아온 옛친구의 뚱뚱한 뱃살은 종주를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게 만들 뻔 했지만, 브라이슨의 아내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엉거주춤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조지아에서 시작해서 테네시, 그 다음은 케롤라이나 주를 지나쳤어야 하지만, 갑갑한 남부 촌놈들의 동네에서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반칙을 해서 렌트카를 타고 버지니아주로 옮겨와서 다시 여정이 이어진다. 버지니아 주에서 시작점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아주 가까운 로아녹 이라는 도시였다. 버지니아에서 펜실베이니아 까지 북상하는 동안에는 비교적 날씨도 순조롭고 지형도 평탄해서 블루리지 마운틴을 제대로 감상한 듯 하다. 내가 81번 고속도로를 타고 지나가면서 봤을 때도 블루리지 산은 높기는 해도 굴곡이 없이 쭉 이어지는 특이한 형상이라, 그 꼭대기 등성이를 타고 걷는 것은 조지아나 테네시의 스모키 마운틴의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렇게 남에서 북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 보고 듣고 배운 것들, 그리고 작가의 박학다식한 지식이 더해져서, 어떤 챕터는 미국의 대공황이 사회전반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논문이 되기도 하고, 어떤 챕터는 판게아 이론에서부터 오만가지 포유동물의 서식지와 식물의 군락을 설명하는 생물학 교과서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챕터는 석탄과 아연광산을 둘러싼 곳의 지형을 설명하는 지구과학 서적이 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구절은, 차를 타고 지나갈 때와 걸어서 이동할 때의 시간과 공간 감각은 전혀 다르다는 것… 어쩌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 상식을 내 두 다리로 직접 경험하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은 상식이 아니다.
자동차를 타고 휙 지나가는 1마일은 아무것도 아닌 거리이지만, 뙈약볕 아래에서 혹은 폭설이 내린 길을 걸어가는 동안의 1마일은 어쩌면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리고 지겹도록 먼 거리일 수가 있으니 말이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도 여기에 조금은 연관이 있지 않나 싶다.
2014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