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편 학교에 일이 있어서 늦게 퇴근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와서 먹이고 씻기고 보살피는 일을 혼자 다 해야 한다. 즉 싱글맘 노릇을 해야 하는 날이다.
학교에서 바쁜 일과 과중한 업무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아이들과 집에 들어오는 순간, 학교에서의 모든 일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어찌보면 아이들 덕분에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 저녁밥부터 준비했다. 빨리 밥을 주지 않으면 과자 찬장에서 군것질거리를 꺼내서 먹고는 입맛을 잃어서 저녁을 먹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에는 둘리양 생일 케익을 굽느라 바빠서 밑반찬을 만들어놓지 못해서 냉동식품이나 간편식품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인스탄트 음식은 늘 먹고 사니까, 한번쯤 내 아이들에게 이런 걸 먹인다고 해서 자괴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기로 한다 🙂
가루에 뜨거운 물만 부어서 저어주면 완성되는 매쉬드 포테이토와, 냉동 미트볼을 전자렌지에 데워서 데리야끼 소스로 버무린 것, 그리고 냉장고에 있던 부추와 당근을 넣고 냉동실에 있던 새우를 잘게 썰어서 부침가루와 콩비지를 넣고 부친 부침개가 오늘의 메뉴로 선정되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잘 섞어주면 완성되는 매쉬드 포테이토는 코난군이 잘 먹는 음식이다.
미트볼도 항상 냉동실에 비축해두는 음식인데, 조리가 다 된 것이라 전자렌지에 2-3분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다. 데리야끼 소스를 뿌려서 먹기도 하고, 크림 파스타에 곁들여 먹기도 한다. 오늘은 데리야끼 소스에 버무렸다.
부추와 새우는 주방 가위로 잘게 자르니 칼과 도마 설거지를 안해도 되어서 좋다. 당근은 예전에 김밥 재료로 준비해서 쓰던 것이 조금 남아서 싹 긁어 넣었다.
두유를 집에서 만들어 먹으니 콩비지가 항상 생기는데 주로 김치찌개에 넣어서 먹다가 오늘은 문득 부침개 반죽에 조금 넣어보았더니 고소한 맛이 아주 맛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코난군에게는 미트볼을 많이 담아주고…
야채를 잘 먹는 둘리양의 접시에는 부침개를 많이 담아주었다.
약간의 반전은, 코난군이 부침개가 맛있다며 추가로 네 개나 먹었고, 둘리양은 한 입만 먹고 남겼다. 대신에 둘리양은 감자를 두 번이나 먹었다.
아이들 밥을 먹여놓고 코난군의 책가방을 열어보니, 일주일만에 간 학교라 받아온 유인물과 과제와 여러가지 서류가 이렇게 가득하다. 어떤 것은 내일 당장 보내야 하고, 어떤 것은 금요일까지 해가야 하는 숙제가 있고…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그저께 먹고 남은 고등어 구이를 데워서 딱 한 공기 남은 밥을 긁어서 식사를 했다. 빈 전기밥솥에는 새로 쌀을 앉혀서 내일 아침에 밥이 되도록 타이머를 맞춰두었다. 아이들 떠주고 남은 음식으로 남편의 도시락 반찬은 이미 싸두었고, 내일 아침에 갓 지어진 따뜻한 밥만 퍼담으면 도시락 준비는 끝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코난군의 학교 서류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중간 성적표가 있다. 수학과 읽기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어서 자랑스럽다는 선생님의 평가가 있었다. 아래에 빨간색 동그라미는 1학년인 코난군의 읽기 실력이 2학년 후반 (2.8) 혹은 중반 (2.3) 의 수준이라는 뜻인데, 왓킨스 선생님이 칭찬의 의미로 액설런트! 라고 쓴 메모도 보인다. 그레이드 이퀴벌런트 라고 부르는 이런 표기는 앞자리 숫자는 학년을 의미하고 뒷자리 숫자는 1에서 9까지 분포하는데, 2.8 이라면 2학년을 마치기 한 달 전 – 한국으로 치자면 2학년의 1월 정도 – 수준이라고 해석한다.
아이들을 씻기고있자니 남편이 돌아왔다.
싱글맘 노릇이 끝났다 휘유~
어제 남편은 오늘의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매주 월요일은 내가 저녁 강의가 있어서 남편이 퇴근길에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저녁을 먹이고 치닥거리를 혼자 다 해야 한다.
이렇게 잠시동안의 싱글맘 노릇도 힘든데 이런 저런 이유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얼마나 힘들까?
2015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