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엄마에게 지원군이 도착했다

 5,669 total views,  1 views today

통근 거리가 먼 남편은 아침에 자기 밥 챙겨먹고, 커피 한 주전자 만들어놓고, 자기 출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직 어린 둘리양의 등원을 맡겼더니, 안그래도 친한 친구 하나 없는 반으로 올라가서 적응에 힘들어하는 아이가 더욱 힘들어하다 못해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심지어 기저귀도 안적시는 상황에 빠져버렸다.

 

나는 나대로, 아침마다 긴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저녁에 미리 씻고 자면 아침에 머리카락 손질을 다시 해야해서 이중으로 번거롭다. 긴 머리를 자르면 되지않을까? ㅎㅎㅎ 우리 가족 이발을 모두 내가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미용실에 다닌다는 것은 모험이다 :-), 교생실습지도나 강의가 있는 날은 화장에다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준비를 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지만, 그 사이사이 남편과 아이와 내 도시락을 챙기고, 아이들이 아침 먹는 것을 채근하고 (그나마 아침 식사는 간단한 씨리얼이나 요플레 같은 것을 먹인다), 학교 준비물이나 제출해야할 서류같은 것을 챙기고 (이런 일도 가급적이면 저녁에 미리 해두려고 하지만 어떤 것은 반드시 당일 아침에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일기예보를 확인해서 아이들 입성을 제대로 갖추어주고, 심지어 도시락에 쪽지를 써넣어 달라는 아들의 부탁도 들어주고, 아이들 양치질, 물고기 아침밥, 이런 것을 챙기는 와중에 두 아이들이 말다툼이라도 하거나, 어린이집에 들고갈 장난감을 고르느라 늑장을 부리거나, 운동화 끈이 말을 안듣는다며 징징거리기라도 하는 아침이면…

말 그대로 나는 완전히 돌아버리게 된다.

 

코난군을 스쿨버스에 태워보내는 것은 정해진 시간을 놓치면 안되는 일이라 신경이 곤두서는데,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둘리양은 이것저것 요구하며 정신을 산란하게 만든다. 그러다보면 꼭 한 가지씩 빠뜨리고 출근하거나, 커피컵을 쏟거나, 하는 사고가 생긴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둘리양은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내 손을 단단히 붙잡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들고간 장난감과 소지품을 제자리에 넣고 손을 씻기고 (어린이집 규칙이다. 도착하면 가장 먼저 비누로 손을 씻어서 사소한 전염성 질환을 예방하려는 목적이다.) 선생님과 하와유 인사를 나누고, 결국에는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내어 선생님께 넘기고 돌아나오면 휘유~ 하는 한숨이 절로 난다.

 

학교로 운전해가는 동안에는 직업인 모드로 변신해서 오늘 있을 회의나 문제학생 상담, 앞으로 있을 중요한 업무, 강의준비와 실습생 참관, 조교에게 시킬 일, 옆방 교수와 함께 진행할 일, 다른 과 교수와 의논할 일, 오늘까지 꼭 제출해야 하는 서류, 등등의 잡다한 궁리를 한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하면 아침에 제아무리 서둘러도 아홉시가 넘는 시간이라 사범대 건물 가까운 주차장은 자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저 멀리 돌아가서 차를 세우고, 강의가 있는 날은 뾰족구두에 흠집이 나도록 걸어서, 비가 오는 날은 가방에 커피잔에 우산까지 들고서, 연구실로 걸어가야 한다.

 

학교에서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일상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항상 쌓여있지만, 거기에 더해서 항상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긴다 (만화영화 짱가 주제가처럼 :-).

지난 주에는 4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불리 (=왕따) 문제가 생겨서 다른 과목 강사 선생님과 이메일을 수차례 주고받고, 전화로 회의를 하고, 부학장님과도 회의를 하고, 마침내 오늘 오후에 당사자 학생들을 모두 불러모아 부학장님과 동료교수와 함께 회의를 하기로 했다. 3학년 학생 중에도 시급히 개선해야할 문제를 가진 학생이 있어서 오늘 오후에 좀 보자고 약속을 잡아두었다. 이런 류의 회의는 미리 어떤 이야기를 어떤식으로 풀어나갈지 잘 계획해두어야 하고,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학생의 문제행동이 개선이 잘 되어가는지 후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즉, 어마어마한 정신노동과 시간이 드는 일이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학생들이 발생하면, “저 학생만 아니었다면 내 일이 이렇게 바쁘고 힘들지 않을텐데” 하고 원망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 학생이 아니어도, 또다른 누군가가 또다른 어떤 문제를 가지고 나를 바쁘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남편과 통화하며 각자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퇴근을 하게된다. 하루종일 아빠 엄마가 그리웠던 아이들은 양쪽 귀에 입 하나씩을 대고 엄마엄마 하면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난리가 난다.

도시락통을 꺼내서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고,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면서 아이들을 씻기고, 코난군의 숙제를 확인해주고, 그러느라 바쁜 사이에 아이들은 벌써 간식장에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꺼내서 먹고는 배가 불러서 저녁밥에는 관심이 없다. 남편은 체중조절을 위해서 저녁밥을 잘 먹지 않는다. 나혼자 숟가락을 들고 앉으면 아이들은 또 다가와서 그 늦은 저녁에 숨바꼭질을 하며 놀자거나, 오빠가 자기를 놀린다며 일러바치곤 한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은 우편물 확인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들여놓거나, 빨래를 돌리거나, 코난군의 태권도 수업을 데리고 왔다갔다 하고, 우유나 식빵을 사러 급하게 나갔다 오는 등, 아빠의 업무를 하느라 바쁘니, 나혼자만 독박으로 바쁘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아이들이 자라면 엄마로서의 일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이다. 더 바쁘고 더 정신이 없다.

그러한 전차로…

 

마침 시간이 허락되는 아버지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정년퇴직하시고난 후에도 단기계약직으로 간간이 일을 하셨지만, 요즘 한국 경기가 나빠지고 그사이 연세도 더 드신 우리 아버지에게 더이상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는지라, 몇 개월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

지난 토요일에 도착하신 할아버지 덕분에 주말부터 내 영혼은 한결 가벼워졌다!

내게 달라붙어 엄마엄마 하던 녀석들이 이젠 할아버지에게로 옮겨간 것이다.

아이들과 할아버지가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여유롭게 식사준비도 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기고, 심지어 한국 잡지에 다달이 보내는 원고작성 까지도 집에서 마칠 수가 있었다. 보통의 주말이라면 아이들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장시간 느긋하게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할아버지가 오시자마자 내 정신세계와 시간적 여유가 무척 풍요로와졌다.

석달 후에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나면 어떻게 될지는 지금으로서는 모르겠다. 될대로 되겠지… ㅎㅎㅎ 암튼 지금 현재 이 여유를 즐길 예정이다.

 

아이들에 대한 내 인내심의 한계치도 여유가 생겨서, 샤워를 하면서 칭얼대는 둘리양에게 평소같았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었을 것을, 그러지 않고 다독이면서 결국에는 샤워를 무사히 마쳤다.

샤워를 마친 후 둘리양이 원하던 만화그림이 있는 반창고를 붙여주어야 하는데, 다 쓰고 없어서 징징거리며 옷을 안입겠다는 것을 잘 달래서 민무늬 반창고를 붙이고 거기에 겨울왕국 캐릭터 그림을 펜으로 직접 그려주었다. 작대기 사람 그림이지만 둘리양은 엄마가 그려준 반창고를 더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이다.

아 뿌듯!

나도 시간과 마음에 여유만 있으면 이렇게 착하고 좋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단말이다!!

ㅋㅋㅋ

 

최근에 우리 학교 물리학과에 교수직 자리가 났는데, 남편이 그쪽으로 이직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다니는 학교보다는 통근 거리가 가깝고, 나하고 같은 학교이니 스케줄 조정하기도 더 쉬울 듯 해서이다.

 

낮동안에 넓은 집에 혼자 계실 아버지께 죄송하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나는 부모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2015년 10월 5일

DSC_4195.jpg

 

Related Posts

Subscribe
Notify of
guest
5 Comments
Oldest
Newest Most Voted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밤톨

안녕하세요? 혼자 오랫동안 조용히 소년공원님 글에 공감하기도 하고 적극적인 긍정 에너지에 탄복하기도 하며 팬하고 있었던 아줌마예요 82쿡의 조용하고 오래된 회원이기도 하구요 무작정 들이대려니 민망하여 제 이야기를 좀 할까요? 저도 학부와 석사는 유아교육을 전공했구요 박사는 교육학을 공부했답니다 유치원생은 아주 긴 세월동안 대학생들은 그보다 좀 짧게 가르치고 있기도 하지요 서로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오랫동안 해오다가 이제야 용기내어 댓글 써 봅니다 이 블로그 시스템이 어떤지 잘 모르고 그래서 여기까지만 일단 쓸게요

밤톨

그리고 남편분 같은 학교 임용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드릴게요

admin

응원 감사드립니다. 서버 장비의 이전 때문에 겸사 겸사 홈페이지를 개편했는데,

덕분에 로봇이 계속해서 회원으로 가입하는 바람에 일단 회원가입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구글 캡차를 사용하게 되면 회원가입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시다시피 조금 시간이 지나야 여유가 있겠네요.

그때까지 댓글로 남기세요.

고맙습니다.

밤톨

네 그럴게요 천천히 서로 알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공원

밤톨 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제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시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게다가 유아교육을 전공하시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신 경력과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시는 이력까지도 저와 비슷해서 더욱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번에 새로 바뀐 홈페이지 구성은 저에게도 아직은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만, 남편 말이 그 동안에 무슨 프로그램이 많이 바뀌어서? 어쩔 수가 없다더군요.

(기술적인 관리는 남편이 도맡아서 하고 있고, 저는 글과 사진을 올리기만 하거든요 🙂

 

이렇게 댓글로 서로 인사나누고 함께 토론을 하는 것도 저는 좋구요, 아니면 제 이메일로 연락을 주셔도 환영입니다.

bpark3골뱅이radford.edu가 제 이메일 주소입니다.

 

제 짐작으로는 밤톨님께서 저보다 조금 더 연배가 높으신 듯 한데…

선배 직장맘으로서 제게 조언이나 자문을 해주시면 참 좋겠어요 🙂

암튼 또 연락되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