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빠서 써주지 못했던 도시락 쪽지를 다시 써달라고 코난군이 부탁했다. 제눈에도 요즘 엄마가 출근을 매일 하지도 않고 학교 견학에도 따라오는 등, 시간적 여유가 있어보였나보다 🙂
어제 도시락 쪽지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다:
이제 2학년이 끝나는 날이 하루밖에 안남았네?
엄마는 2학년인 코난군이 참 좋았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걸으면 딱 좋을만큼 키가 컸고, 엄마가 하는 말을 잘 알아듣고 도와줄 수 있을만큼 생각이 자랐고, 동생에게 친절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낼수 있을만큼 성숙했기 때문이지.
3학년이 되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로서는 2학년이 최고의 학년이었어!
그리고 오늘은 마침내 2학년의 마지막 날이다.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방학을 하는 날은 단축수업을 하고, 수업을 한다기 보다는 교실을 정리하고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순서로는 아이스크림 파티를 하는데, 역시나 학부모 자원봉사를 모집해서 아이스크림을 떠주고 토핑을 얹어주는 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참석하기로 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이스크림 파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커피샵에 앉아서 원래는 다음세대 원고를 쓰려고 했는데, 급한 이메일을 몇 개 쓰고났더니 더이상 "일"과 관련된 것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고 (아무래도 방학이다보니… ㅎㅎㅎ) 또 원고 마감일도 아직 일주일 정도 남았으니 아이들이 방학하고 집에 있어도 원고를 쓸 시간이 조금은 있겠지 싶은 잔꾀가 나서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했다.
오늘은 코난군의 2학년 마지막 날일 뿐만 아니라 둘리양의 종업일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매년 9월 30일 기준으로 만 5세가 되는 연령의 아이들이 킨더학년에 입학을 하게 되니 둘리양은 아직 어린이집을 1년 더 다녀야 한다.
그러나 방학 동안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 데리고 있을 예정이라, 오늘 종업 행사가 한 학년의 마무리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
둘리양은 이미 졸업식 (올해로 바이올렛 룸을 졸업하는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저녁에 있다) 행사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무슨 옷을 입을지, 등등을 이야기하며 들떠있다.
작년에 잔뜩 쫄아서 무대위에서도 선생님에게 안겨 노래는 커녕 두 눈알만 굴리고 있던 모습이 생각나서 너 올해에도 그럴거야? 했더니, 그럴거라고 한다 ㅎㅎㅎ
행사에 대해 들떠서 이야기하는 것과, 무대에서 과감하게 노래하는 것은 별개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ㅎㅎㅎ
둘리양도 지난 일년 간 큰 성장을 이루었다.
처음에 레드룸에서 적응하기 힘들어하던 것부터 시작해서, 바이올렛룸으로 반을 옮기고도 적응하는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우리 부부만의 힘으로는 부족해서 한국에서 외할아버지를 불러들이는 일까지 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가 아닌 아빠와도 등원을 잘 하고, 아빠가 이를 닦아주어도 행복해하고, 심지어어떤 날은 엄마가 운동을 하는 동안에 아빠와 먼저 잠이 들기도 한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도 무척 잘 지내고 있고, 집에 오면 어떤 친구와 무슨 놀이를 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해준다.
이번 여름 방학을 집에서 보내고 다시 개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작년처럼 심하게 부적응 현상을 보이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롭게도 이번호 다음세대 원고 주제가 방학을 마치고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아이들 돕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
아이들은 자란다…
(그 동안에 나는 늙는다… ㅎㅎㅎ)
이웃에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이 있는데, 어떨 때는 개가 사람보다 키우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람 키우기가 개 키우기 보다는 희망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은 개보다는 훨씬 더 큰 진보를 보이며 자라니까 말이다.
물론, 그 진보라는 것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리스크가 분명히 있다.
3학년이 되면 어떨지 모르겠다는 말이 단순히 경험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고, 2학년의 성숙함과 온순함이 3학년에 가서는 시건방짐과 반항심으로 진보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을 포함한 것이다.
그냥 복불복이려니…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암튼 아이들을 데리고 생산적이고 재미있게 놀아주어야 하는 방학이 오늘 저녁부터 시작된다.
코난군에게 피아노를 가르쳐주기로 했고, 매일 수학 학습지를 두 페이지씩 풀기로 했고, 둘리양은 매일 책 한 권을 읽고 관련된 활동을 하는 스토리 스트렛쳐를 하기로 했다.
그 밖에도 아마도 코난 아범은 틈나는대로 코난군을 데리고 테니스 코트에 나갈 것이고, 태권도를 계속해서 다닐 것이고, 과학 관련 캠프를 이주일간 보내기로 예정되어 있다.
둘리양을 데리고 부엌에서 함께 요리를 해서 성실한 밥상을 차리는 노력도 해야겠다.
참, 매일 저녁에 두 아이들과 함께 가족방학일기를 적겠다는 결심도 했다 🙂
무언가 기록을 남겨두면 어영부영 방학이 끝나버렸다는 허무함과 상실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2016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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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바로 그 날 저녁에 찍은 사진을 덧붙인다.
둘리양은 보무도 당당하게 바이올렛룸 친구들과 함께 졸업식 행사장이 있는 빌딩까지 걸어가…
고 있었으나…
사진을 찍고있던 아빠와 엄마를 보는 순간!
더이상 걷지 않겠다며, 엄마에게 안아달라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안겨서 강당 뒷편 대기실에서 함께 기다리다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엄마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바이올렛룸 어린이들의 공연순서가 되었을 때 무대에서 둘리양을 볼 수 없었다.
무대에 오르는 계단 앞에서 엄마와 함께 친구들의 노래와 춤을 감상했던 것…
ㅋㅋㅋ
혹은
ㅠ.ㅜ
행사가 끝나고 어린이집 마당으로 돌아와서 핏자를 먹고 파티를 할 때는 즐거워했다.
무대공포증이 아니라 무대꺼림증이라고 이름짓는 것이 둘리양의 경우에 더 맞는 듯하다.